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덴마크 자유교육. 송순재. p253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학교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삶이 필요하다!
#무한경쟁 시대, 자녀교육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덴마크의 국부 격인 그룬트비? 이 나라의 자유교육 이야기가 내 인생의 전혀 엉뚱한 국면에 등장한 것이다. 나의 덴마크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덴마크 자유교육의 역사와 현황
#덴마크의 자유교육
교육에 대한 국가의 독점을 거절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힘을 합쳐 정치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자유로운 형태로 설립·운영하는 독자적 교육기관인 자유학교, 프리스콜레
덴마크의 모든 중요한 학교법은 정치적 합의 위에 기초한다…덴마크 교육 지형도가 보여주는 이 특이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니콜레이 그룬트비 (1783~1872)와 크리스텐 콜(1816~1870)이라는 두 사상가로부터 유래한다.
그룬트비의 사상과 활동은 기독교 신앙과 덴마크 문화와 민중들의 삶에 대한 독특한 문제의식을 근거로 전개되었다. 그 사상을 요약하자면, 현재 일어나는 사건으로서의 살아 있는 말과 살아 있는 삶, 덴마크 국민과 문화, 국민의 계몽, 특히 농민 계층의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 자유와 자유교육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룬트비의 사상은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말하기 전에, 나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자신을 하나의 인격으로 흥미롭게 발견하는 일은 전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만을 유일하게 흥미로운 존재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그렇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된다 함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시민대학. 그가 의도한 것은 덴마크어를 듣고, 토론하며 즐기고, 정치적 자리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능력이었다.
그룬트비는 학교보다는 집에서 하는 교육을 좀더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즐거움과 기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교사와 부모 등 다양한 주체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하고, 강의와 시험이 능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담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콜은 그룬트비의 사상적 영향권 안에 있기는 했지만 독자적 사상을 발전시켜 현실에 구현한 실천적 사상가였다.
그룬트비는 성인을 위한 시민대학을 구상하면서 형식교육이나 직업훈련보다는 ‘삶의 계몽’을 추구했다. 따라서 시험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교수 기술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시적인 역사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말’로 하는 교수법은 실제 생활과 구체적인 관계를 가지도록 했다…그가 가장 우선시한 대상은 농촌 청년들이었다.
학교의 일상은 농가의 일상과 비슷했다. 교사와 학생들은 한 가족처럼 어울려 지냈다…콜의 힘과 매력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로 이야기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크리스텐 콜은 문필가는 아니었다. 그는 인격적인 참여와 살아 있는 말로써 교육을 행했다. 이러한 교육적 영감은 기록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전하는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전승되었다.
콜에게 한 가지 중대한 한계가 있었다면 강한 카리스마와 압도적인 리더십 때문에 동료 교사들이 종종 부차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아울러 후계자를 길러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때문에 사후 일정 정도 공백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 문제는 삶의 진지한 교류와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가 자유학교의 전제라면, 그 방법도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시민대학에 대한 그룬트비와 콜의 생각은 같은 맥락이고 콜이 이를 현실화시켰다는 것이다…두 사람 모두 책에 담긴 지혜를 혐오했고 인간은 ‘살아 있는 말’로 각성시키고자 했다.
두 사람 모두 시험을 거부했고, 수업을 보편적 인간이라는 주제 아래 강연과 이야기 나누기 방식으로 진행했다.
학부모들은 지역의 공립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학교를 세웠다. 학부모가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 대신 집에서 가르쳤으며, 만일 스스로 할 수 없으면 다른 부모들과 힘을 합쳐서 가르쳤다.
이렇게 국가는 학부모들이 누려야 할 공교육제도로부터의 자유를 공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초기의 자유학교는 교육 내용상으로는 부분적으로 보수적 성격도 함축하고 동시에 민족주의적이었지만, 방법적으로는 놀라우리만치 현대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오래된 미래!)
작은학교. 아이들은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모든 교사를 알고 지낸다
#자유학교의 운영 원리와 실제
소수자의 권리. 이런 방향에서 진보를 이룩한 나라는 별로 없다. 덴마크에서 소수자는 자기들 의사에 따라 학교를 세우고 이 학교가 국가적 지원을 받도록 함으로써 다수자의 지나친 횡포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도록 보호를 받고 또 그럴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견해는 결국 소수자가 세운 학교에 많은 자유를 보장하게 되었다.
자유학교에서의 자유? 이념적/교육적/경제적/교사 임용의/학생 선발의 자유
#덴마크 자유교육의 법제화 과정과 쟁점
공립기초학교, 폴케스콜레. 법안에서 공립기초학교의 의 목적을 밝힌 다음 조문들은 아주 중요하다. 그 안에 교육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이상을 담아, 사회와 각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조. 폴케스콜레는 부모와 협력해서 학생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준비시켜야 한다…학생 개개인이 다방면에 걸쳐서 소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격려해야 한다.
2조. 폴케스콜레는 공부하는 방법을 계발해서, 학생이 그것을 경험하고 흡수하고 진취적으로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3조. 폴케스콜레는 학생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토대를 둔 사회 안에서 참여 의식, 공동의 책임감,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게끔 준비시켜야 한다.
PISA 조사 결과(국가 순위 하락). 이 조사가 기계적인 읽기 능력과 교과서 지식을 재생산하는 방식만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었다. 기본교육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 있는 결과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태도와 관련해서 학생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독립적인 사고력의 발달 겉은 것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조사가 교육적 결과를 좀더 쉽게 평가하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금방 드러나지 않는 가치들은 무시하지 않았는지, 또 이러한 가치가 지닌 영속성이나 중요성이 무시되어 교육이 절름발이가 되어 가는 건 아닐지, 염려와 비판이 제기되었다.
## 덴마크 교육 현장을 둘러보다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자유교육_나가타 카즈이
이처럼 느슨하지만 높은 질을 확보하느라 효율적이고 철저한 교육이나 훈련 시스템을 잦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교육이 가능한 진짜 배경은 대화를 중시하고 자유로우며 비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인지도 모른다.
민중운동 역사 속에서 자란 교육 시스템
덴마크에는 교육 의무는 있어도 취학 의무가 없다.
이런 새로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이후의 민중교육사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덴마크의 민중교육사를 말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둘 있다. 니콜레이 그룬트비(1783~1872)와 크리스텐 콜(1816~1870)이다…실천가로서 콜은 암기와 훈련에서 벗어난 학교, 자유학교를 만들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부모의 권리. 제9조 공립 초·중학교에서 실시하는 내용에 준하는 교육을 자유학교에서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자유학교의 전반적인 활동을 감사하는 일을 해당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가 담당한다. 학부모는 어떤 방식으로 감사를 실시할지 스스로 결정한다.(교육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부모이자 시민, 지역사회)
학교교육법 제33조는 ‘가정학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은 학교교육에 참가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규정. 홈스쿨링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제4의 선택도 가능하다. 그것은 스스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정부는 교사 자격의 유무나 구체적인 교육과정에 대한 규정, 교육 내용에 대해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덴마크 사회에서는 기존의 것이 자기와 맞지 않으면 대안을 선택하면 되고, 대안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가 대안을 만들면 됩니다. 이런 기회를 언제나 열어 놓는 사회제도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삶을 위한 학교.
덴마크 사회는 시험점수로 진단하는 평가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시험 때문에 시달리는 경우도 거의 없다.
“덴마크 사람들은 평등이란 말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죠. 우리는 무언가를 판단하고 실천할 때 이 단어를 잊지 않고 떠올리죠. 인간을 서열화하는 시험에 흥미를 갖는 사람도 별로 없을 뿐더러 아예 실시하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덴마크 사람들은 순서 따위는 믿지 않습니다. 영국같이 일류, 이류로 학교를 나누고 서열을 매기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자유중등학교를 마치기까지 한 번도 시험을 보지 않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자유교육의 다양성을 키우는 다원적 네트워크. 철학과 성격이 서로 다른 학교들이지만 ‘다섯 가지 자유’라는 원칙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여 함께 일을 풀어 가고 있다(이념적/교육적/경제적/고용의/선발의 자유)
부모 참여와 자유로운 학교 만들기. 정부가 부모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적극 지원한다는 사실은 덴마크 자유교육의 큰 특징이자 강점이다.
어떤 교육과정을 만들든 자유다. 교과서도 무엇을 사용해도 좋다. 시험을 보든 보지 않든 그것도 자유다. 우리가 찾은 자유학교와 자유중등학교도 시험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지향 덕분에 전혀 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녀교육을 남한테 맡겨 버리는 부모는 드물다고 한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학교 만들기. 자유학교. 시민의 학교 만들기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조정이라기보다는 지원이라는 인식이 시민 쪽이나 정부 쪽에도 정착되어 있다.
확실히 덴마크 교육에서 배울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삶을 위한 학교교육’이나 생활 속에서 대화를 중시하는 모습, 연대의 문화 등 세계적인 정신성을 덴마크교육에서 읽어 내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그러나 덴마크 교육 시스템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경우 자유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상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현지조사를 끝낸 느낌이라고 할 것이다.
#삶을 위한 교육_김성오
자유학교와 시민대학.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딱히 ‘학교’교육이라고 할 게 없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공부와 삶은 구분되지 않았다…선생님의 역학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처음 모둠을 만들고 과제를 할당하는 일이 끝난 뒤에는 아이들이 원만하게 과업을 수행하게끔 도와주는 데 머물렀다.
국가에서 정해준 교과서가 아닌 교과 담당 선생님이 선택한 교재를 가지고 공부한다…교사는 자신이 자르치고자 하는 것을 가르친다.
자유? “그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다. 그것은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토론을 거쳐 결정하고 또 수행할 권리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나아가 자유는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참여하는 것이며 동시에 위로부터, 국가로부터의 구속에서 자유로운 것까지를 포함한다.”
한국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시민적folkelig”? 성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말
덴마크의 교육이념, 특히 자유학교와 자유중등학교, 시민대학 같은 사립학교들의 핵심적인 교육이념은 삶을 위한 학교로 축약할 수 있다.
이는 현대 기술문명에 대한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컴퓨터….삶을 위한 것이지 우리처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터넷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구호성이 아니다…수공예, 연극, 체육활동 등 몸을 움직이게 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회적·역사적 정체성을 망각하고 기술 문명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도록 한다.
또 이들 자유학교에는 시험이 없다…시험을 보지 않음으로써 개별 교과목 공부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덴마크 사회에서 교육은 그 형식에서 보았을 때도 전체적으로 삶의 과정을 중시하고 있으며, 내용 또한 추상적이며 모호하지 않고 몸으로 느끼고 일상속에서 올바른 습관으로 정착되도록 하는 교육이란 느낌을 받았다…결코 새로울 것은 없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너무나 머나먼 이상으로 남아 있는 이치를 새삼스럽게 확인한 기회였다.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덴마크 교육 기행_이호훈
자유학교는 정부의 정책을 따를 필요가 없고 교육정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지요. 독자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자유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이념과 원칙을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지켜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유학교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이야기 수업
나는 누구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대학
시민대학에 관한 그룬트비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참된 자아를 찾는 일로 학교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가르쳐야 한다는 의도입니다. 둘째는 공동의 선에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는 현대교육의 지지자들은 그룬트비의 질문 자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현재적 의미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합니다.
#학교 같지 않은 학교, 니 릴레스콜레_존 홀트
덴마크의 니 릴레스콜레는 진짜 가르침이 이루어지는 학교다. 이곳 아이들은 어른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고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어른을 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을 학교하고 불러야 해요. 아이들은 학교 가야만 하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여기를 학교라고 부리지 않으면 아이들이 오지 않는답니다.”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에 아이들이 가는 장소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곳을 전혀 학교 같지가 않다. 어떤 ‘교육’도 이곳에는 없다. 이곳은 사실상 뭔가를 ‘하는’ 장소다…교사..대체로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해 있는 걸 지켜보고 질문에 답해 주거나, 이야기를 나무며 아이들 곁에 가까이 있을 뿐…영국의 ‘열린 학교’나 비슷한 성격의 미국 학교 교사들처럼 먼저 ‘이걸 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가치 기준으로 아이들이 해야 할 것을 정해서 던져 주지 않는다.
이 학교에는 학구적으로 보이는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또한 아이들에게 읽기 공부를 시키려는 어떤 종류의 압박도 없다.
“…여행의 성과는 모형 지도뿐 아니라 사진, 일람표, 춤, 구두 보고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나는 아이들이 경험한 걸 춤으로 표현하는 걸 보고 그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교장 선생의 글
왜 항상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하는 걸까?..나 같으면 꼭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애쓰기보다 그 열매가 저절로 맺혀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여유 있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 같다. 열매가 익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한다. 너무도 ‘창조적인’ 교사들이 애써서 성과물을 만들도록 부추기지 않는다면 그런 식의 결과물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결코.
그러나 니 릴레스콜레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우리는 아이들이 주도적인 이런 학교가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도 못한다…니 릴레스콜레 아이들은 자연스럽고 꾸밈없고 솔직하고 열려 있고 정직하고 대담하고 생기 있는 반면 다른 학교 아이들은 감정을 숨기고 소심하고 속이고 신중하고 이런저런 체하고 음울하거나 유혹적이어서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은 각자의 일을 하고 날이면 날마다 그곳에선 새로운 일이 펼쳐진다.
니 릴레스콜레 부모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들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아이들을 믿지 않는다면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부모와 아이들은 남다르다. 우리가 아이들이 세상을 참모습을 알아낼 거라는 걸 믿어줄 때, 신뢰를 줄 때 아이들은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학교 풍경. 소박한 학교.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품은 나무로 된 맥주상자다. 소박하고 튼튼한 이 나무상자는 이 학교의 정신을 대변한다. 이 나무상자 없이는 이 학교를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비품이든 아이들이 쓰기 위해 존재. 전형적인 미국 학교에서 보이는 굳게 잠긴 시청각 교재실, 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 같은 것은 없다.
출석. 아이들은 허락을 받거나 돌아와서 결석에 대한 변명을 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학교에 없는 동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내가 그 학교를 찾았을 때는 모두 봄. 길고 어두운 겨울이 끝나고 햇살이 비치면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싶어 한다. 이때는 아이들 중 거의 절반이 학교에서 빠져나가고 없는 것 같다. 겨울 동안에는 학교 안에 있는 것을 훨씬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무엇을 하나. 지켜보는 것의 가치? “본다는 것은 소중한 행위다. 아이들에게 봐야 할 필요성은 존중되어야 하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데 빠져드는 일을 방해해선 안 된다. 오히려 ‘격려해야’ 한다…어떤 아이들은 스스로 하기 전에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 아이들은 자신이 하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곰곰히 씹고 생각해보길 좋아한다.”
난폭한 아이도 변한다. 도망간 아이? 이미 겁을 먹고 부끄러워하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더 벌을 주고 수치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뭐하려고, 그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심하게, 자기는 나쁜 아이라는 것 느끼게 할 것인가? 그 아이가 그토록 거칠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건 바로 이 느낌인데 말이다.
이 학교가 잘 되는 이유. 대화 그리고 경험의 연속체
“우리는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단지 대화가 있을 뿐이다. 아이들 사이에. 아이와 어른 사이에… 대화는 끝이 없다..생각은 계속된다.
경험의 연속체? 그런 경험은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종소리와 분절된 수업시간, 수업계획, 유도된 토론 등 온갖 것들이 이런 경험을 방해하고 흩뜨려 놓는다.
비범한 교사들? 교사들은 뭐든 할 줄 알고 만들 줄 한다. 많은 경험과 유능함을 학교로 가져온 셈. 이 교사들이 지닌 자연스러운 권위의 많은 부분이 이 유능함에서 온다.
일반학교든, 자유학교든 문제의 많은 부분이 교사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데서 온다. 자기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좋아하고 존중하는지, 그리고 프리스쿨 같은 데서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아주 진진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때 내가 “자네는 뭘 할 수 있나?” 하고 물으면 그들을 깜짝 놀란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을 때가 너무 많은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그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곳에서, 그들을 돌보도록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데 반대한다. 그 장소와 사람들이 얼마나 멋진가는 문제가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하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그 모든 구성원에게 열려 있고, 다가가기 쉽고, 환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회, 그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나이야 어떻든, 능동적이고 진지하며 책임 있고 유익한 부분을 담당할 권리를 갖는 그런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마을이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