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T에서 산업은행으로, 유이찬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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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찬 동문 (기계, 14)
유이찬 동문이 근무하는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GIST 유이찬(기계, 14) 동문이 지난 1월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에 입행했다. 산업은행은 기업금융 지원을 위해 세워진 국책은행으로 일종의 금융공기업이다. <지스트신문>은 유이찬 동문을 만나 GIST에서의 경험과 진로에 대한 조언을 물었다. 다사다난했던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 유이찬 동문은 후배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볼 것을 강조했다.

유이찬 동문 (기계, 14)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GIST 기계공학부를 올해 졸업한 산업은행 입행 3개월 차 신입행원이다. 아직 배우는 단계지만 산업은행 본점 기업금융실에서 석유화학, 에너지, 철강, 소재 기업들의 금융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GS, 한화, 포스코 등이 주요 거래처고 이들의 운영자금과 원자재 관리, 시설 투자, 기업 인수 등 다양한 금융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GIST 입학부터 산업은행 입행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과학고등학교에서 넓은 분야를 접하지 못한 채로 대학에 온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GIST를 다니면서는 대학원 진학에 미래를 한정하지 않고 진로 선택의 폭을 넓게 잡으려 노력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입학했기에 저학년 때부터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려 했다.

GIST에서는 수학, 과학 외에 다른 수업을 많이 수강했다. 김상호 교수님, 김희삼 교수님 두 분의 수업을 들으며 경제학을 공부했고 김건우 교수님, 진규호 교수님을 통해 법학과 경영학도 접했다. 다양한 과목 중 경제학이 제일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전공을 경제학으로 선택했고 진로도 경제, 경영 쪽으로 생각하게 됐다. 군 복무 중에 금융투자분석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복학 후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인턴으로 지냈다. 이를 계기로 향후 진로를 금융공기업으로 정했다. 2020년 12월부터 공인회계사 수험서로 독학하며 입행 준비를 시작했고, 작년 12월에 경영 직렬로 최종합격했다.

 

GIST 출신으로서 산업은행 입행 시 어려웠던 점은?

취업 정보 조사부터 입행 시험 준비까지 모든 게 어려웠다. 상경계열 전공 학생, 타 대학과의 교류, 그리고 해당 분야로 진출한 선배님, 3가지 중 어느 하나도 주변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카페와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나에게 맞는 직무, 산업, 직장을 찾기까지 굉장히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 GIST에 입학한 후 졸업까지 8년이나 걸렸다.

입행 과정에서도 많은 시련이 있었다. 교내에 금융공기업 커뮤니티가 없다 보니 자기소개서를 돌려보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산업은행 필기시험을 위해 회계사 수험서를 들고 공부하던 때도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필기시험 합격 후 면접을 준비할 때도 교내 스터디가 없어 매주 광주와 서울을 왕복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지만, 수월했다고는 하지 못할 것 같다.

취업을 준비하며 GIST의 소프트 파워 부재에 대해 실감했다. 역사도 짧고 사람도 적은데 선배들의 지식이나 경험을 공유하고 축적할 수 있는 수단마저 없어서 아쉬웠다. 이런 부분이 빨리 개선되어 후배들은 조금 더 수월하게 자신의 진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공계 출신이 산업은행에서 갖는 강점이 있나?

분명히 있다. 산업은행에 들어와 보니 직무를 수행할 때 기술에 대한 이공학적 배경과 재무적인 역량이 동시에 필요한 경우가 많다. 산업은행 입행 전에도 이공계 출신으로서 쓰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주전공이 기계공학임에도 경영 분야의 진로를 생각한 이유 역시 이공계 출신인 것이 해당 분야에서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증권사에서 인턴을 하며 제약바이오 섹터에서 일했던 경험은 이공학적 지식의 필수성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산업은행에서도 이공학적인 배경은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있게 입행을 준비했다.

실제로 산업은행 내에서 이공계 분야 지식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탄소중립을 필두로 하는 기후 대응이 전 세계적인 관심사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주력 산업은 석유화학과 철강 등이어서 탄소배출량이 많다. 따라서 탄소 저감기술을 개발하고 공정을 개선하며 설비를 합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아가 거시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등 저탄소 비즈니스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작업 또한 요구된다. 이를 위한 자금을 공급하는 산업은행에서 에너지 기술, 공정, 설비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바이오,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에 이공계 출신이 필요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산업은행 역시 GIST 구성원들이 설립한 기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덧붙여 산업은행이 아니어도 민간 VC에서 이공계 석·박사들이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는 바야흐로 ‘팍스 테크니카’ 시대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경제를 이끄는 시대라는 뜻이다. 지금의 탄소중립을 넘어 양자 컴퓨팅 등 다음 과학기술의 파도가 올 것이고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고부가가치 산업군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이 ‘다음 파도’에 대한 자금 수요 역시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련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이공학적 배경은 앞으로도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

 

산업은행에 이공계 출신이 많은 편인가?

산업은행 내에서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공학 계열 출신들을 전공별로 선발해 왔다. 공학 직렬로 입행하신 분도 있고 저와 같이 공학을 전공하면서 동시에 경영이나 경제를 공부해 입행하신 분도 있다. 현재 공학 직렬 채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2021년 상반기 채용에서는 전체 55명 중 무려 16명이 생명, 기계자동차 등 공학 직렬로 뽑혔다. 2021년 하반기 채용에서도 환경, 화학 등 공학 직렬을 지속적으로 선발했다. 기술기반 기업에 대한 투자가 지속됨을 고려하면, 이러한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진로를 고민하는 GIST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민에 허우적대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감히 말하자면, 관성에 얽매이지 말고 원하는 대로 경험해보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빅데이터가 주어져야 딥러닝 모델의 신뢰도가 올라가듯, 경험 없이 관성과 막연한 느낌만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그저 과학고를 나와서 과기원에 왔으니 무작정 대학원에 간다는 식의 발상 말이다. 가는 방향대로 쭉 가는 관성은 ‘물체’나 갖는 것이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쫓을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험해 보고 나서 선택해도 늦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확신을 갖고 사는 것 같다. 경험하고 확신하게 된 학생들이 많아질 때라야, 학생이 행복함은 물론 GIST의 연구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라 생각한다.

GIST는 매우 특수한 환경이다.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이지만 학술적으로는 굉장히 자유롭다. 이런 ‘학술적 자유로움’을 십분 활용함과 동시에, 학교 밖으로 최대한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예상한 가능성은 물론,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세렌디피티’가 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조금은 부끄러웠다. 더 뛰어난 동문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께도 도움을 청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