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의 어제와 오늘…등정 60주년

인류의 에베레스트 첫 등정이 29일 60주년을 맞았다.

1953년 5월29일 영국 원정대에 참가한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경은 네팔의 가이드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다. 이로 인해 두사람은 세계의 영웅이 됐다.

힐러리의 아들 피터는 “(아버지) 힐러리와 텐징은 1950년대와 60년대의 록스타였다”고 말한다. 그는 “1953년의 이 등정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그들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다.그들은 그곳에서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고 정상 도착 직전의 칼날 같은 능선을 통과할 수 있을 지,나중에 힐러리 스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정상 바로 밑의 직벽 구간을 오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당시 원정대의 일원으로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칸차 셰르파(81)는 당시 등정이 힘들고 험난했지만 환희로 끝을 맺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가 이 일과 관련해 섭섭한 점이 있다면 에베레스트 첫 등정의 영광이 원정대원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누구나 텐징과 힐러리가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것을 알지만 원정대 전체가 당시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아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칸차 셰르파는 당시 등정을 지원하기위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부근의 바크타푸르에 모인 짐꾼이 1천200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는 길도, 자동차도,비행기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그 곳에서 부터 걸었으며 (오늘날 에베레스트 상행 루트가 시작되는) 남체까지 16일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그 때는 사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어려웠다.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그러나 우리는 온 힘을 다했다. 처음 얼음으로 뒤덮인 쿰부 구간을 마주쳤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그것이 처음 만난 장애물이었다.”

그는 동료 셰르파들과 함께 나무를 스무그루 베어 이를 사다리 처럼 이용해 베이스 캠프 바로 위에 있던 쿰부 구간을 올랐다.

이랬던 에베레스트 등정이 이제는 많이 변했다. 베테랑 셰르파 출신으로 지금은 탐험여행 회사를 운영하는 템바 체리는 그동안 보아온 이런 변화에 한탄한다. 에베르스트가 다양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기록을 세우는 것이고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수천,수만달러를 지불하려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 집계에 따르면 1990년 18%에 그쳤던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률이 지난해에는 56%에 달할 정도로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하루에 234명이 정상에 선 일도 있다. 등정 성수기에는 정상에 이르는 길이 길게 늘어선 줄로 한없이 정체될 정도이다.

각종 장비 지원으로 등정이 쉬워지면서 1953년 이후 지금까지 3천명 이상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올 시즌에 오른 사람만 해도 540명이나 된다.

그 중에는 80대 노인도 있고 한쪽 다리를 잃은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 팔을 잃은 남성의 첫 에베레스트 등정, 사우디 아라비아와 파키스탄 출신 여성의 첫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도 있다.

유럽 산악인들과 네팔 셰르파들의 패싸움이라는 유례없는 불상사도 있었다. 네팔과 인도가 군 병력을 동원해 치운 쓰레기도 올 시즌에만 4톤이 넘는다.

그런데도 정상에 이르는 곳곳의 주요 길목에는 쓰레기가 여전히 쌓여 있다. 노르가이의 손자 타시 텐징은 네팔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네팔 정부) 지도자들이 산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네팔 정부는 에베레스트 등정 60주년을 맞아 4일 동안 계속해온 ‘에베레스트 등정 60년제’ 행사를 이날 카트만두 도심의 옛 궁전에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런던에서 이날 열리는 행사에는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칸차 셰르파 등 유명 산악인들이 참석한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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